[98/12] 풍경소리/곰배골에서 강선리가는 옛길

풍경소리/곰배골에서 강선리가는 옛 길

천국은 시간이 없는 곳
안치운/연극평론가


옛 길을 따라
상상을 해보면 양양사람들은 논화리에서 오색을 거쳐 박달령을 넘어 귀둔으로 갈
수 있었고, 동시에 서림으로 내려와 조침령을 넘어 현리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렇지 않으면 양양에서 광원리의 붉은덕 버덩을 거쳐 개인산 아래를 구비구비 감돌
며 흐르는 계방천과 내린천을 따라 상남 혹은 홍천군 내면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었
을 것이다. 현재 이 길은 강원도에서 446번 지방도로 개설 및 포장공사를 하고 있
는 중이다. 계곡 아래에 쌓여있는 절벽을 절개한 토석들이 이 길이 지니고 있었던
천연림과 아름다운 계곡미를 통째로 앗아갔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 사행천인 내린
천을 따라 삶둔과 월둔에 이르렀던 옛 길을 어찌 잊을 것인가.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는 옛 길이 지닌 인내와 겸손의 시간을 기억하라고 쓴 적
이 있다. 길은 오랜 세월동안 인내하면서 제 모습을 지니게 되고, 걷는 이의 발아래
에 놓이면서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겸손으로 쓸모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진동리
끝인 삼거리에서 바로 올라가면 오색으로 넘어가는 단목령과 만난다. 삼거리에는
어느덧 ‘하늘 찻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차를 파는 집이 생겼다. 이 동네에서 태
어난 이가 주인인데 도시에서 살다가 결혼 후, 아예 아버지가 홀로 견디고 있었던
이 집으로 되돌아 와 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가 꾸민 찻집은 어설프기 그지없
었다. 벽난로며, 통유리며, 받침대로 쓰고 있는 옛 재봉틀이며, 나무 껍질로 덧댄 실
내장식이며, 그 위에 쓴 조악한 글과 내용들이 그러하다. 이 모든 것은 주인인 그가
잃어버린 이 곳의 정서를 되찾기보다는 도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집의
모든 것이 마뜩치 않다. 빨리 이 집을 나오고 싶었다. 오지는 이렇게 가벼운 도시의
영향으로 낯설게 변화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것이 도시의
형태”라고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썼지만, 진동리 끝 삼거리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찻집에서 나와 삼거리 조금 아래, 강선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길 왼편에는
두 개의 무덤이 있다. 그러니까 무덤 앞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죽은 자
가 산 자의 발걸음을 이끌어 주고 있는 셈이다. 죽음 다음에 비로소 생명이 있는
것처럼, 강선리 마을은 점봉산 계곡 안에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무덤 옆에서는
덩치 큰 고장난 농기구가 버려진 채 녹슬고 있었다. 예전에는 무덤 앞 너른 밭에
배추를 심었지만, 이른 봄, 그 자리에는 잔풀들만이 가득해 묵정밭이 되었다.

은둔인가 가난인가
점봉산 해발 8백미터에 자리잡은 강선리는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에서도 꽤 먼 곳이
다. 강선리에 가기 위해서는 귀둔의 곰배골에서 곰배령을 거쳐 내려가는 것이 빠르
다. 현리에서 방동리와 진동리를 거치고 진동계곡을 거쳐 강선리에 이르는 길은 약
20킬로가 되고, 비포장일 뿐더러 차로 가기 어려운 아주 먼 길이기 때문이다. 강선
리에서 점봉산 정상(1,424m)까지는 6백미터 정도의 표고차를 나타낸다.
강선리 마을은 길가에 있는 마을이 아니라 점봉산으로 깊이 들어간 곳에 있다. 진
동리 반대편인 귀둔리쪽에서 보면 곰배골을 넘어 내려가야 한다. 이 길은 사람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폭을 지닌 숲 속의 길, 양양과 인제에 살던 옛날 사람들이 험
한 설악산과 점봉산 그리고 가리산을 피해 돌아가야 했던 삶의 숨결이 담긴 길, 지
금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말한다. 나뭇길은 나무꾼들이 다니는 좁은 길을
뜻하고, 오솔길은 거닐기 좋은 호젓한 길이다. 산길은 산에 나있는 길이고, 산길은
험한 길을 뜻한다.
강선리로 가는 길은 숲 속에 난 오솔길이다. 그 길은 산으로 들어가는 나무와 풀로
된 시간의 동굴 같다. 숲속의 길로 들어간다는 것은 인공의 삶을 포기하고 자연의
삶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숲으로 들어간다고 하지 말고 숲으로 돌
아간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문명과 상처의 삶으로부터 그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곳이 숲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삶이란 거친 삶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뜻한다.
숲은 문명의 삶이 아니라 야생의 삶이 있던 곳이다. 숲으로 돌아가면 누구나 경건
한 자세를 지니게 된다.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존재하는 숲에서 사람들은 경망하게
노래하지 않고, 술에 취해 몸을 맘대로 하지 않는다. 자연의 총체와 같은 숲은 시간
을 초월한다. 숲이라는 공간에서는 물질의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지는 리듬을 경험
해야 한다. 숲속의 길은 지속되고 있는 리듬의 완만한 흐름과 같다. 사람들이 숲속
에 들어가게 되면 태도는 단순 명료해진다. 숲은 사람들을 자연 그 자체가 되도록
하면서 길들인다.

길 - 세월과 조우
강선리에 이르는 길은 참 좋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오붓하다던가 조붓하다던
가 하는 표현으로는 걷는 기분을 다 전할 수 없다. 진동리 삼거리에서 강선리 마을
에 이르는 길은 도시라는 것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길의 표본과 같다. “굽이굽
이 간수(澗水)가 가로지른 초망(草莽) 속의 지름길”(김동리의 등신불에서)과 같은
길이다. 간수는 산골물을, 초망은 풀숲을 뜻한다. 비록 강선리의 삶이 불안하고 가
난했을지언정 이 길은 걷는 이에게 옛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길은 그대로
이지만 걷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옛 길은 텅 비어 있다. 굽은 산길을 가다 만나는 모롱이에서 우리는 지정거릴 수밖
에 없었다. 옛 길을 걷다 사라진 세월을 마주본다. 옛 길은 우리가 걸으면서 보는
길이지만 동시에 추억하는 길이다. 옛 길과 친밀해지는 것은 길과 걸어가는 이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추억이 조응해서 어떤 내밀한 관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
다. 밟지 않는 내 앞의 길과 지나간 발자국을 위로하는 것은 떨어진 낙엽들과 흔적
없이 길을 가는 바람뿐이다. 옛 길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길섶의
나무들이다. 천둥과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서있는 나무들 아래로 옛 사람들이 다녔
던 길이 있다.
인적이 드문 옛 길은 외롭다. 옛 길을 가는 이들은 어디서나 외로운 사람들이다. 외
로움이 비수처럼 허리춤에 찾아들 듯, 외로운 이들은 옛 길을 찾아 들어간다. 걸을
수록 강선리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지닌다. 이런 길을 따라 가고 오는 이들은 얼마
나 행복했을까. 이 길은 과거와 괴리가 없다. 옛날 사람들도 이 길 위를 걸어갔을
테니까 과거와 오늘의 존재방식이 다를 리 없다. 길은 그 길을 따라가면서 잃어버
린 세계를 꿈꿀 수 있을 때 옛 길이 된다. 옛 길은 보는 것보다 꿈꾸는 것이 많은
노스탤지어를 지닌 길이다.
강선리 마을에 이르자 굴뚝에 연기가 솟아오르는 집이 보였다. 이 곳 사람들은 몇
년전 전기가 들어왔지만 아직도 군불을 지핀다. 산 속에 마을이 여기 뿐만은 아니
지만, 강선리는 그 이름부터 오지 분위기를 듬뿍 풍기고 있다. 강선리(降仙里) 혹은
강신리(降神里)라고 마을 사람들은 발음한다.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고
해서 이렇게 불린다. 마을이라고 해야 가구 수는 4가구뿐이다. 최근에 도시를 떠나
이 곳에 정착한 젊은 부부도 있고, 한 스님이 공부하기 위하여 집을 지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가 되었다.

봄은 생명이다
강선리는 원래 화전민들이 살던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마을
의 형세를 보면, 화전민들이 살던 집이라고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강선리는 산에
불을 질러 화전민들이 모여 사는 터이기보다는 신성함이 느껴지는 승지와 같다. 진
동리에서 들어가기도 어렵고, 남설악 오색의 관터마을에서 돌이 많은 박달령(단목
령)을 올라 북암령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내려와 삼거리에서 들어가기에도 멀고,
귀둔에서 가자면 점봉산 곰배령을 넘어가야 하고, 양양에서 서림을 거쳐 조침령을
올라, 쇠나들이, 설피밭을 지나 걸어오기에는 너무 먼, 깊은 산 속에 숨겨 놓은 듯
한 터이기 때문이다.
강선리 마을에서 바라본 점봉산의 숲은 깊다. 점봉산은 흙과 숲의 산이다. 원시림이
라고 부르는 숲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강선리 마을을 지나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건너면 인적이 없는 곰배령을 향하는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어느 쪽을 가던
지 곰배령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그러나 길 위쪽으로 겨울에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눈은 걷는 이의 허리 아래까지 차 올라 있었다. 다
만 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가장자리 쪽으로 눈들이 녹아 눈 위에 커다란 구새를 만
들어 놓았다. 나무는 제 몸을 둘러싼 겨울눈을 빨아들여 봄의 생명을 준비하고 있
었다. 숫눈길은 아니지만 눈 덮인 길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우리는 힘을 잃기 시작
했다. 한쪽 발이 눈 속에 깊이 빠지면 다른 한 발은 위태롭게 흔들렸다.
겨우내 쌓여 조금씩 녹기 시작하는 눈길에 빠지면 손을 묶어놓은 듯 꼼짝할 수 없
었다. 글자그대로 속수무책이다. 바로 앞이 길이지만 한발짝을 옮겨놓아도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시간쯤 지나서야 위급함을 느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
어 강선리로 되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강선리 길로 올라 곰배
령에 이르고, 다시 곰배골로 내려가는 길은 낯선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길을
돌아 내려오면서 우리들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수사도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왔던 길을 되밟아 돌아가기가 안타깝다는 표시로 계곡으로 들어
섰다. 산의 핏줄과 같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걸었
다. 허벅지 높이로 자란 산죽이 지천인 길이었다. 강선리로 들어오기 전 희망이었던
길은 이제 기다림의 길이 된다. 언제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단 말인가.

어둠과 빛
강선리 마을로 거의 다 내려와서, 징검다리가 있는 계곡에 머문다. 어린아이처럼 실
없이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른 봄, 계곡 옆에는 일센티미터도 안되는 새싹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아래 강선리가 내려다 보인다. 마을이라고 하기에 너무 작은
이 곳, 아까 배낭을 벗어놓고 쉬고 있을 때, 길을 안내해주었던 노부부가 사는 초가
집의 겉은 그들의 애옥살이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 것, 맞
담이니 돌각담이 하는 담이 없다. 대문 역할을 하는 쌉짝도 없고 사립짝도 없다. 짐
승이나 막으려는 바자울도 없다. 초가집과 초가집 사이에는 담장 역할을 하는 울타
리가 없다. 집과 집 사이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밭이 있을 뿐이다. 흙으로 지은 집
안은 전기를 켜지 않아 어둡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집 안에 불을 켜 두지 않는다.
어두워도 보는 데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온 우리들에게 어둡다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둠이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공포라면, 강선리에 사는
이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빛과 같다. 그들은 어둠의 빛으로 자기자신과 바깥을 본다.
어둠을 통해서 빛으로 나아간다. 우리들은 더러 빛으로도 무엇인가를 보지 못할 때
가 있지 않는가. 강선리에서는 지는 해를 보기 위하여 문을 열 필요가 없으며, 비가
오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처마 밑에 몸을 세워 둘 필요가 없다. 일을 하는 시간과
끝내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00:13)
제작년월: